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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사도북 하자."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왜?"
그러자 그녀가 또 대답했다.
"'불편한 여행'에 관한 글을 써야 해. 불수사도북이 한여름 불편한 여행 콘셉트에 딱이야. 선배랑 해야 해."
나는 대답했다. "좋아."
장보영 작가는 <아무튼 산> 저자다. 2020년 6월 발간된 이 책은 최근 '10쇄'를 찍었다. 등산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유명하다. 작가로서 입시기관 뿐만 아니라 트레일러닝 선수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국내에 트레일러닝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0여 년 전부터 산에서 달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여러 대회에 나가 톱 랭킹에 든다.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체력이 좋고 산을 좋아한다. 등산이 싫다고 <등산 시렁>이라는 책을 낸 내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연락한 건 아마도 불수사도북 코 중고차딜러 스를 제대로 알고 있어서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중에 그녀는 불수사도북 종주를 위해 나에게 연락한 이유를 밝혔다.
"산길을 모르는 건 아니고, 혼자라도 할 수 있었지. 그냥 선배하고 가면 편하고 재미있으니까. 체력은 이미 검증됐고. 그리고 언젠가 선배가 출근길에 불수사도북 종주에 도전하려다가 중간에 접었던 기억이 났어. 공동담보 경매 이번에 같이 완주해보자(장보영과 나는 한때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 그녀보다 나이가 많고 회사에 먼저 입사한 나는 당연히 그녀에게 선배라고 불린다)."
우리는 이렇게 뜨거운 여름 불수사도북을 하게 됐다.
불수사도북은 불암산(508m), 수락산(637m), 사패산(552m), 도봉산(신선대 726m), 북한산(백운대 83 파산면책제도 6m)을 잇는 도로와 능선으로 이뤄진 코스, 강북 5산 종주라고도 한다. 쉬운 코스가 아니다. 총거리 43km에 이르고 누적고도는 3,800m에 달한다. 전문가 중 8시간 정도 걸려 완주하는 사람이 있고, 숙련된 하이커 중 22시간 걸려 종주하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어려운 코스'다.
장보영은 왜 수많은 여행 중 불수사도북 종주를 '불 이자계산공식 편한 여행'으로 꼽았을까? 그녀는 이 코스를 약 5년 전 혼자서 종주한 적 있다. 북한산에서 시작한 당시의 여정은 수락산에 이르러 끝났다. 그녀 역시 불수사도북을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 정도라면 자신의 몸과 정신을 괴롭힐 불편한 여행으로 손색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우리는 약속한 날 밤 10시 서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에서 만났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가자 뜨거운 공기가 훅 불어왔다. 상관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서 물을 보충했다. 편의점 직원이 등산복 차림의 우리를 보고 말했다.
"운동 가요? 지금 이 시간에? 아휴! 보기만 해도 더워 보여!"
우리는 그냥 웃었다. 우리도 왜 더운 야밤에 산을 타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유가 궁금할 때마다 거기에 답을 하는 대신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진짜 미친 것 같아."
불암산 백세문 앞에 섰다. 밤 11시였다. 사진을 찍고 불암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둘 다 숨을 헉헉댔다. 등산로 바닥에 곱등이처럼 생긴 '갈색여치'가 뛰어다녔다. 장보영은 갈색여치보다 더 강력하게 뛰었다. 계단도 뛰어 올라갔다. 나는 그녀 뒤에서 겨우 따라갔다. 밤 12시에 불암산 정상에 섰다. 장보영은 지친 (척) 했다. 그녀가 말했다.
"하아, 힘들어. 더위 싫어. 산 싫어!"
나는 힘들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동안 쉬었다.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에서 쿨쿨 자고 있는 모든 사람이 부러웠다. 우리는 수락산 방향으로 내려갔다. 덕릉고개에서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누군가 내 몸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자발적으로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따라 움직였다. 장보영도 그렇게 보였다. 그녀는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괜찮지 않다면 바로 하산하려고 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아까 에너지젤을 연속으로 두 개 먹었더니 속이 이상해. 하지만 괜찮아."
수락산에서 내려와 편의점에 들렀다. 나는 김밥 한 줄과 콜라 500ml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장보영은 의아해했다.
"불수사도북할 때 원래 이렇게 먹고 가는 거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보통 트레일러닝 대회 때 들르는 CP(체크포인트)에선 이런 식으로 먹지 않는다. 5~10분 동안 물통의 물을 채우거나 간단하게 에너지를 보충하는 식이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거 진짜 여행이네."



편의점에서 나와 1호선 회룡역을 통과했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진이 빠진 장보영은 역 앞에 놓인 벤치에 누웠다. 나도 옆에 놓인 의자에 벌렁 누웠다. 이때 즈음부터 우리는 이 종주가 시합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이후 우리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대로 20분쯤 누워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다시 걸었다. 사패산에 올랐다가 도봉산 신선대로 향하는 중에도 바위 위에 벌렁 누워 또 잠을 잤다. 그리고 새소리에 깨어나 비척비척 걸었다. 우이암을 지나 우이동에 내려오니 오전 11시였다. 나는 사무실로 가서 일을 해야 했다. 우이동에서 장보영과 헤어졌다. 그녀는 북한산을 마저 타기로 했다. 날씨가 끔찍하게 더웠다. 저녁 7시쯤 그녀에게서 북한산 삼천사로 하산했다는 문자가 왔다. 달력을 보니 마침 '소서小暑'였다.
며칠 뒤 그녀에게 물었다.
"보영아, 이번 불수사도북 어땠어?"
힘들었다거나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엄살부릴 줄 알았는데 그녀는 기대에 빗나간 대답을 했다.
"다정했어."
이상한 그녀에 대답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또 물었다.
"북한산이 가장 다정했니?"
이어서 그녀가 다정했다는 말의 뜻을 풀어서 설명했다.
"전체적으로 평온하고 담백했음."
내 기억으론 전혀 담백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뜸들이는 밥통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고, 나는 장보영이 "산이 우리를 괴롭혀! 산이 싫어!"라고 외친 걸 똑똑히 기억한다. 그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잡아 뗐다. 너무 힘들어서 당시의 기억을 잃었거나 일부러 그 기억들을 쓰레기봉투에 넣어 내다버린 듯했다. 그녀는 왜 변했을까?
저 심리상태를 대표하는 용어 중 하나가 '무드셀라 증후군'이다. 무드셀라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람이다. 969세까지 살다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살면서 내내 옛날 일을 추억하며 "그때가 좋았다"고 읊조렸다. 여러 학자는 무드셀라 증후군이 현실 도피와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즉, 자신이 처한 현실이 우울하다고 여길수록 더 잘 느낀다는 것이다.
장보영의 경우 산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다가 현실 세계로 돌아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원고를 써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렸고, 이것이 너무 싫었던 그녀는 덥더라도 산에서 40km를 달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본인이 참가했던 여러 트레일러닝 경기 때와 달리 비교적 여유롭게 잠을 자고 실컷 먹었던 기억이 평온하고 담백했던 추억으로 변형된 것일 수 있다(육체적, 정신적으로 치열하고 고달팠던 경기 때와 달리 이번 불수사도북 종주는 그녀에게 충분히 '여행'일 수 있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한 모양으로 <아무튼 산> 표지에 이렇게 적어 놨다.



장보영 작가가 쓴 책 '아무튼 산'. 인기가 많다. 최근 10쇄를 기록했다.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다른 방식으로 나 역시 그녀와 똑같다. 지방의 이 산 저 산을 헤집고 다니며 '취재'할 때는 사무실에서 일할 때가 그립고, 일주일간 사무실에 콕 박혀 원고 쓸 때는 너무도 괴로운 나머지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산을 오르는 게 더 낫다고 여긴다. 무드셀라 증후군이 정신병이라고 한다면, 일년 내내 오락가락 시달리는 나는 중증 환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힘들었던 기억을 삭제하고 좋고 아름다웠던 것만 남겨 추억하는 일은 장보영과 나 같은 사람에겐 확실히 이득이다. 기어코 산에 오르고 또 올라 '나'를 산에 새기는 것이다. 아주 깊이. 나에게 더 이상 산에 갈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때 장보영과 같이 탔던 능선을 멀리서라도 볼 것이다. 거기 또렷이 새겨진 나를 보며 웃을 것이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