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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히켈이 그린 ‘1793~94년의 하원’. 영국이 프랑스 혁명 전쟁에 처음 참전했을 당시 영국 의회 하원을 묘사했다. 윌리엄 피트(가운데 서서 손짓하는 인물) 총리가 회의장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 소장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과 파면 정국을 거쳐 조기 대선을 앞둔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물리적 시간으로 치자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두 서로 다른 국회를 경험했다.
하나는 비상계엄 선포의 즉시 해제를 결의함으로써 민의 대변 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했던 국회다. 다른 하나는 정파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전투구와 담합을 불사하는 국회다. 후자의 국회는 사실 반복해서 목격해온 국회 모체리마스터 다운로드
습이다. 전자의 국회는 국가 위기 순간에 의회 민주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화두를 던져주었다.
국회는 흔히 국민의 대표 기관이요 인민주권의 제도적 장치라고 불린다. 그런 권위와 위상의 근거는 무엇일까? 평균 60%대에 불과한 투표율을 기록하는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근거만으로는 충분할 것 같지 않다. 국회를 대의민주주의의 중추가양귀비예시
되게 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도 있다. 대체 국회는 왜 존재하는가?



그래픽=양진경


존 로크의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궁리해보는 데 도움이삼성중공업주가전망
되는 고전이다. 이 저작은 잉글랜드 국왕 찰스 2세 및 왕당파 대 의회파의 갈등으로 정국 불안이 극에 달했던 1679년부터 1683년 사이에 집필된 ‘통치에 관한 두 편의 논고’의 일부다. 당시 의회파를 지칭하는 ‘휘그’의 이론가이자 17세기 잉글랜드의 대표적 철학자인 로크는 국왕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하는 왕권신수설 논박에 초점을 맞춘 논문에 이어 정치권력점상한가
의 또 다른 기원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정부 구상을 밝힌 논문을 잇달아 작성했다. 집필 당시의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원고는 대담하고도 위험한 것이었다.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 로크는 1683년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났고, 명예혁명이 성공한 후 1689년 귀국할 때까지 네덜란드 이곳저곳을 떠돌며 숨어 지내야 했다.
로크는 당시 릴게임오션
자신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절대군주정을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시민 정부’라 불렀다. 시민 정부는 우선 그 기원과 목적에서 절대군주정과 달랐다. 절대군주정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서 유래하는 아버지로서 자격과 권력을 지배권의 원천으로 내세우는 데 반해 시민 정부는 자연 상태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로 동의하고 서로 협약을 맺는 데서 시작된다. 또한 절대군주정은 군주 자신의 좋음(이익)을 추구하지만 시민 정부는 그 구성원의 좋음, 이를테면 생명·자유·재산의 보존과 번영,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목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로크의 근대국가 구상을 ‘시민적’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의회제다.
로크는 입법 권력을 행사하는 의회가 정점에 놓이는 권력구조를 제시했는데, 이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법률이 의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법률의 불편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의회가 특수한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다양한 사람이 의회에 번갈아 참여토록 한다는 원칙이다. 로크의 논의에서 이 원칙은 법을 제정하는 집단과 법에 복종하는 집단의 일치를 염두에 둔 제안이다. 그럴 경우 인민의 대표와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절대군주정에서처럼 구분되거나 상반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 이 원칙은 의회가 공공선을 위해 법률을 만들도록 하는 필요조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로크는 공공선이 ‘철인왕’ 같은 특별한 인물에 의해 직관적으로 알려질 수 있다고 보지 않았고, 루소처럼 어떤 단일한 일반의지를 상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로크는 공공선의 요구를 판단하는 일 자체가 시민 정부의 인민이 대표자를 선택해서 권력을 위임하는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로크에 따르면, 공공선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상황·의견·이해관계를 검토하고 여러 입장에서 토의하는 것이 의회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 “토의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면에서 이유를 따져보기 전에” 혹은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고려해서 표를 던지는 자들은 인민의 진정한 대표가 아닐뿐더러 그런 행위는 심각한 신탁 위반이다.
공공선은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에서 로크가 구상하는 시민 정부를 특징짓는 핵심 개념이다. 절대군주정에서는 인민의 이해관계와 군주의 그것이 뚜렷하게 구분되고 단지 후자를 위해서만 정치적 의사결정이 내려지므로 공공선이란 있을 수 없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각자 자기 보존을 위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공공선을 고민하고 모색할 여지가 적다. 오직 시민 정부에서만이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수준을 넘어 전체로서 인민의 좋음을 고려하는 데 이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로크의 의회는 ‘국가 최고 권력기관’으로서보다 ‘공공선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회의체’로서 더 부각된다. ‘참여’냐 ‘대표’냐 혹은 참여의 ‘직접성’이냐 ‘간접성’이냐 같은 이분법을 가로질러 로크의 의회제 논변이 주목하는 것은 진지한 검토와 자유롭고 성숙한 토의를 통해 공공선의 요구를 판단하고 결정하여 법률로 완성하는 의회의 능력이다.
내전과 혁명이 잇따른 17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집필된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에는 현실 비판과 함께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이런 그의 논변은 한낱 이상주의자의 몽상으로 치부되지 않고 억압적 권력으로 고통당하는 세상 곳곳에 변화를 향한 기대와 동력을 불어넣어 왔다.
로크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로크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국회가 그 자체로 하나의 특권 집단이 되어 나머지 공동체 구성원들과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리하여 지속적인 권력 재창출을 위한 선거 정치에 매진하는 한 ‘의회민주주의’는 형용모순에 불과할 뿐이다.
국회가 권력 경쟁에만 몰두하는 엘리트 집단이란 오명을 벗고 대한민국 주권의 원천인 국민을 진정으로 대의하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로크의 의회제 구상과 거기서 비롯되는 ‘의회적인’ 민주주의 전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고전 탐독이 요청되는 이유다.



그래픽=양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