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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저널리즘 위기' 맥락 속 폐지된 도제식 수습기자 훈련 '하리꼬미' 박영흠 교수 "여전히 권위주의 고집하는 언론사는 버림받을 것"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현장. 사진=김용욱 기자.



한국 언론계에는 '하리꼬미'(はりこみ)라는 오랜 은어가 있다. 잠복근무를 뜻하는 '하리꼬미'는 퇴근을 하지 않고 경찰서에서 먹고 자면서 취재하는 행위를 말한다. 넓게 보면HTS거래
뉴스룸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갓 입사한 수습 기자들이 '기자'로 취급받기 위해 받는 혹독한 도제식 훈련을 뜻한다. 길게는 6개월까지 진행되는 교육 기간 동안 출입처를 순회하며 얻은 정보를 1~2시간마다 보고하고, 선배가 지시한 무리한 취재를 해내지 못하면 질타 당했다. 웃지 못하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고, 강제로 술을 먹이거나 인격 모독성 폭언을 모바일릴게임
하는 등 다른 업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징벌을 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하리꼬미'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2016년 한 신문사에서 공식 폐지하며 점차 자취를 감췄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발제를 맡은 박바다이야기앱
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하리꼬미' 폐지를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맥락 속에서 해석했다. 박 교수는 가장 먼저 '하리꼬미'를 폐지했던 언론사의 기자 10명을 포함해 총 15명의 현직 기자들을 인터뷰해 '하리꼬미' 폐지 전후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하리꼬미' 폐지 후에도 저널리즘의 장은 계속해 변화하고 있다며 새로운 뉴스룸 문화 모색이 필주식배당확인
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직 밖에선 '강인', 조직 안에선 '순종' 요구한 '하리꼬미'
'하리꼬미'는 기자란 조직 밖에선 강인하고 적극적이지만, 조직 안에서는 충성스럽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모순적 '기자다움'을 체화시키기 위한 절차였다. 가령 한 기자는 강인함을 기르기 위해 지나가는 경찰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어 싸움을TPC 주식
벌이고 그걸 녹음해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또 다른 한편에선 권위주의를 내면화하고 조직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교육을 시켰다. 전화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선배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수십 장의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점심시간에 경찰서 정문 앞에서 벽을 보고 열중쉬어를 하며 1시간 동안 서 있어야 했던 기자도 있었다.
'하리꼬미'는 기자들이 선배 앞에서 취재 관련 고민과 의견조차 자유롭게 말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박 교수는 “적극성과 순종성이라는 양면성을 갖춰야만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이를 위해선 '하리꼬미'라는 필수불가결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믿음은 저널리즘 장 전체에 공유된 독사”라며 “저널리즘 독사는 '하리꼬미'를 타협이나 조정도 불가능한 신성 불가침에 의해 저널리즘 장의 신화로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현장. 박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사진=김용욱 기자.



굳건했던 '하리꼬미'가 사라질 수 있었던 배경으로 박 교수는 '저널리즘의 위기'를 꼽았다. 언론사 수익이 악화되고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저널리스트들이 취재 과정에서 과거와 같은 특권을 누리기 어려워졌고, 기자 직종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지원자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이러한 관습을 체화해야 할 동기가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하리꼬미'에 대한 문제제기도 새 입사자들의 공개 비판, 대자보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박 교수는 “제가 만난 젊은 기자들은 권위적으로 취재하기보다는 소통과 대화로 공감을 얻으려 했고, 취재 윤리를 잘 지키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상명하복보다는 문제제기를 했고 조직에 헌신해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되기보다 내가 전문직으로서 능력을 갖추겠다는 생각을 가진 기자들이 더 많았다”며 “저널리즘 장 내부 논리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하리꼬미'의 신화도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그는 '하리꼬미'를 체화해 온 시니어 그룹도 저널리즘 장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며 후배 기자들에게 전통과 규범을 요구할 확신을 잃어버렸고, 신규 입사자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며 '하리꼬미'가 사라지는 토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리꼬미'가 폐지된 후 언론계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수습 기자에게도 선배가 존댓말을 쓰는 일이 늘어나거나 후배들이 더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된 식이다. 인터뷰에 응한 다수 기자들은 '우리 언론사에 더 이상 그러한 교육은 발붙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도 권위적 문화를 강요하는 언론사는 존재한다.
박 교수는 새로운 뉴스룸 문화와 질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리꼬미'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뉴스룸 문화를 고집하는 언론사가 있다. 구시대적 교육 방식을 고집하는 언론사는 머지않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관행을 고집했던 언론사는 신규 진입자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리꼬미' 폐지 후에도 여전히 체계적 교육은 부재
'하리꼬미'의 폐지는 전통적 의미의 '단독 기사'가 더는 어려워진 현실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더 이상 출입처에서 특정 기자에게만 해준 중요한 이야기로 단독기사를 쓰는 게 어려워졌고, 독자들은 출입처 기반 새로운 '팩트' 발굴의 단독성 기사보다 영감을 주는 깊이있는 기사에 큰 효용을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현장. 전혜원 시사인 기자. 사진=김용욱 기자.



이날 토론에 나선 전혜원 시사인 기자는 “사회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해 영감을 주는 글 자체도 독자에겐 효용이 큰 단독 기사일 수 있다”며 “어떤 이슈에 대해 영감을 줄 정도의 글은 2~3년에 한 번씩 출입처가 바뀌고 데스크가 되면 기사를 거의 쓰지 않는 환경에선 가능하지 않다. 출입처 문화는 대중과 엘리트를 괴리되게 만드는 언론 불신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심리적 '하리꼬미' 문화는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하리꼬미'에 대해 “시민을 위해 권위에 도전한다기보단 '어디 가서 꿀리지 말고 언론이 위에 있다는 걸 보여줘라'는 식의 도전을 많이 가르쳤다”며 “물리적인 하리꼬미는 없어졌지만 심리적 하리꼬미는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리꼬미'는 없어졌지만 이를 대신할 체계적 교육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효선 성균관대 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 연구소 부소장은 “기자들은 취재 윤리 등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채 현장에 투입되고, 문제가 터지면 그제서야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며 “기자들에게 취재 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현 MBC 기자도 “엄밀한 팩트의 보고를 요구하는 게 하리꼬미 문화의 특징”이라며 “팩트의 엄밀성은 기자들이 앞으로도 변화하는 뉴스 수요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인데, 이를 체화하고 체감할 수 있는 기자 교육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미디어오늘 30주년 세미나 '좋은 언론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나' 현장. 유효선 성균관대 테크놀로지와 민주주의 연구소 부소장. 사진=김용욱 기자.



관련해 박영흠 교수 역시 “기자에게 교육시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도 사라지고 본질이라고 말할 만한 교육 자체가 증발해버린 공백 사태가 벌어진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젊은 세대가 언론사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문제의식 중 하나가 다른 업종에 비해 체계적 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엔 언론사도 대기업도 똑같이 체계적인 교육을 하지 못했고 그때 '하리꼬미' 제도를 통해 교육시켰던 것”이라며 “그 이후 다른 업종에선 신규 참여자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성숙했는데 언론사는 그대로였다. '하리꼬미'가 없어진 후 교육 프로그램이 아직까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이유를 언론이 답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는 “비형식적으로 진행되던 가혹한 방식의 수습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체계적으로 갖춰진 교육인데, 우리 언론에서는 잘 안되고 있다”며 “해외 퀄리티 저널리즘은 한 달 간 기자가 들어오면 윤리 교육만 시킨다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수많은 가이드라인과 규범들을 만들지만 이를 교육하는 기회가 체계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개별 언론사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적 기관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며 “적어도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