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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서연(가명·33살)씨는 지난 27일 서울지하철 혜화역 근처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이날 집회는 동덕여대 중앙동아리 8곳이 학교의 비민주적 행정 및 시위 탄압을 규탄하려고 주최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동덕여대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던 서연씨는 “마침 일을 쉬는 날과 날짜가 겹쳐서 나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현장을 찾았다. “내란 사태 때문에 학생들 목소리가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요.”
서연씨 같은 여성 시민들이 하나둘 힘을 보탰 만70세이상 다. 밀려드는 인원에 주최 쪽이 준비한 손피켓 2천장이 모두 동났고, 미리 신고한 2개 차도 공간으로는 수용이 어려워 거리에 서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집회 분위기는 탄핵 집회와 사뭇 달랐다. 서연씨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도 수차례 참여했다. 콘서트장인 듯 흥이 넘치는 탄핵 집회와 달리 혜화역 집회에선 주변에 대한 원리금균등분할상환 계산 경계와 긴장감이 감돌았다. 지나가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욕하는 사람이 보이는가 하면, 침을 뱉는 사람도 있었다. 서연씨는 “학생들에게 ‘폭력 시위’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부정 여론이 많다는 걸 알긴 했지만 현장에서 목격하니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는 주최 쪽 요청이 수차례 이어지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우리은행 새희망홀씨 사람이 잇따라서 경찰이 이들을 제지하는 광경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사건은 집회를 마친 뒤 벌어졌다. 한 남성 유튜버가 해산 중인 참여자들을 배경으로 실시간 영상 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그는 이 요청을 무시한 채 ‘셀카봉’을 더 높이 들었다. 보다 못한 서연씨가 유튜버의 셀카봉 체감식 ·카메라를 잡아 내렸다. 그러자 이 유튜버는 자신이 서연씨에게 “폭행당했다”며 경찰을 불렀다. 그는 서연씨를 향해 “경찰서에서 데이트하자”고도 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지난달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에 들어가 찍은 영상으로 구독자 증가, 높은 조회수 등 ‘쏠쏠한’ 이익을 본 바 있었다. 그는 서연씨가 찍힌 영상 일부를 갈무리해 자신 상가전세보증금 의 SNS에도 게시했다. 서연씨는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누리집 갈무리


내란 사태로 광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목소리와 연대 행동이 가시화됐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 실천에 앞장서는 여성들을 겨냥한 성차별적 괴롭힘도 잇따르고 있다. 시국선언을 발표했다가 온라인 괴롭힘을 겪은 ㅇ여고 학생 사례가 대표적이다. ㅇ여고 학생회는 지난 8일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일구어진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으로서 “이러한 역사의 반복을 방관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렇기에 우리는 움직인다”고 밝혔다.
그런데 곧바로 다른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한 학생들의 신상을 캐 자신의 SNS에 올리며 조롱하거나 외모를 평가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일이 발생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이러한 게시물을 올린 남학생들을 특정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를 준비 중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11일 논평을 내고 “성희롱과 괴롭힘 등으로 광장에 나선 이들을 위협하는 모든 시도를 규탄한다”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는 팬들을 위해 식음료와 핫팩 등을 ‘선결제’한 가수 아이유도 온라인 괴롭힘 대상이다. 다른 남성 연예인도 ‘좌파’ ‘간첩’ 등이라는 공격을 받지만, 여성 연예인은 성적 괴롭힘까지 더해진다.
신상털기·유포, 트롤링(좌표를 찍어 집단공격) 등 온라인 괴롭힘은 여성이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하는 ‘위축 효과’를 바란다. 유엔여성기구는 성별에 기반한 폭력 행위 또는 위협을 통해 여성에게 신체적·성적·심리적 피해 또는 고통을 초래해 투표, 선거운동, 집회·결사,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 등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실현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를 ‘정치 영역에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본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브리프 제90호).
동덕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대표 ㄱ씨는 동덕여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지난 10일 온라인 살해 협박, 성적 모욕 등을 한 인터넷 이용자들에 대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ㄱ씨는 한겨레에 “내 신상이 유포되면서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걱정됐고, 자기검열이나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하면 솔직히 거짓말”이라면서도 “(괴롭힘)가해자들의 목적이 내가 위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이뤄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온라인 괴롭힘은 온라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 직접적인 위협과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실은 매우 폭력적인 ‘테러’에 가까운 행위라고 본다”며 “온갖 성적 폭언 등을 통해 여성의 입을 틀어막고자 하는, ‘입틀막’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괴롭힘 행위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 낸 의제인 대통령 탄핵이나 대학 민주화, 공학 전환 등의 내용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을 갖고 비판하는 대신, 외모를 품평하고 성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정치적 실천을 깎아내리는 남성우월주의자들의 ‘찌질한’ 정치 행동”라고 풀이했다.



‘집게 손 모양’을 했다는 이유로 남성을 비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넥슨의 게임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의 홍보 애니메이션 장면. 해당 영상 갈무리


‘입틀막’하려는 성차별적 온라인 테러·괴롭힘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8일 ‘우리는 졸렬한 백래시를 넘어서 더욱 거센 페미니즘 운동을 펼쳐갈 것이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민우회는 지난해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집게 손’ 억지 논란을 멈추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미신고 집회’라는 경찰 신고가 접수돼 최근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을 부과받았다. 기자회견 전부터 살해 협박 등 온갖 괴롭힘을 당한 민우회는 “여성단체의 정당한 활동을 위법 행위로 고발하고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페미니즘 백래시”라고 비판하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민우회는 입장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일련의 괴롭힘이 여성단체뿐 아니라 현실의 여성, 개인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고 쉽게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다. 고발장을 몇 줄 적어 제출하는 것, 좌표 찍고 악성 댓글을 다는 것, 사무실에 악성 민원전화를 거는 것, 익명으로 무책임한 욕설을 내뱉는 것, 이런 것들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 같은 억지 주장, 비아냥거림, 괴롭힘으로 여성들에게 겁을 주고, 여성들의 일자리를 뺏고, 일상을 무너뜨리고, 입을 막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무너진 일상을 재건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여성들, 두려움을 뚫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다시 말하기를 시작하려는 여성들에게는 매 순간 얼마나 많은 용기와 투지가 필요한가. (…)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비겁한 공격을 넘어설 것이고, 더 거세고 힘찬 페미니즘 운동을 추동해 나갈 것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