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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산을 오르는 일도 좋지만 발견하는 건 더 큰 축복이다. 2016년 스위스 베르너Berner알프스의 그로스피셔호른Grossfiescherhorn(4,049m) 정상에 섰을 때,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두 명을 보았다. 그쪽은 끝없이 펼쳐진 설원과 빙하뿐인데.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돌아와서 지도를 펼쳐 손가락으로 그들이 갔던 길을 좇았다. 그렇게 핀스터라르호른Finsteraarhorn(4,272m)을 찾아냈다. 꿈이 곧 운명인 것처럼 10년 만에 그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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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을 마치고 젖은 장비를 햇빛에 말리고 있다.


핀스터라르호른은 산악 스키로 오르기로 했다. 산이 빙하 계곡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맑은 날 사흘 정도가 필요했다. 봄 시즌 스키로 오르는 것이 수월하고,강남아줌마
산장이 문을 여는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이 가장 적기였다.
'스노 트레일' 장비 없이 못 가
산행의 출발지는 스위스 그린델발트Grindelwald다. 장비점마다 시즌 마감을 알리는 세일 문구들이 걸려 있었다. 봄이 가까웠다. 멀리 아이거Eiger 정상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었지만 시간을 누가 멈추랴. 첫날 목적지는 핀오션
스터라르호른산장으로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아이거 익스프레스를 타고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역까지 올라갔다. 이곳은 융프라우요흐로 향하는 융프라우 철도의 환승지로 겨울 시즌에는 스키어들의 주요 기점이다. 기차를 갈아타고 융프라우요흐까지 올라갔다. 산악열차가 느릿하게 오르는 동안 창밖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스키를 가지고 기차를 타는 경우 맨 앞 증권분석사
객차에 스키를 따로 실어 주어 이동이 훨씬 편하다. 관광객들 틈에 말없이 앉았다. 앞자리에 놓아 둔 32L 아르바 배낭, 94mm 다이나스타 엠프로 스키, 8mm 베알로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가장 큰 산은 우리가 절대 찾을 수 없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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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부근 북서릉 암릉. 산악가이드와 동행한 네덜란드팀. 날씨가 아주 좋았다.


융프라우요흐역에 도착해 햇빛이 잘 드는 테이블 위에 장비를 올려놓았다. 알레치빙하를 스키로 내려가기 위해 장비를 착용했다. 초콜릿, 2L의 물, 참치랩, 에너지젤을 배낭 맨 위쪽에 넣었다. 주변에는 몇몇 팀들이 각자 목적지로 향해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 역 내부에 스핑크스터널을 지나 스노트레일로 나가는 출입구로 갔다. 여름이면 이곳엔 집라인과 같은 관광객을 위한 체험시설을 운영하지만 겨울과 봄엔 출입이 통제된다. 현지 산악 가이드와 동행하거나 스키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만이 설원으로 나갈 수 있다. 바리케이드를 넘어 눈 밭으로 나갔다.



핀스터라르호른 산장. 1905년 건축 후 몇 차례 개보수를 거쳐 2004년 현재 모습으로 지어졌다.


오늘 계획은 알레치빙하를 따라 콩코르디아플라츠~그룬호른고개(3,286m)~피셔빙하~핀스터라르호른산장까지 향하는 여정이다. 스키 없이 콩코르디아플라츠까지 빙하를 타고 내려간다면 약 세 시간이 걸릴 거리지만, 스키를 신으면 20분이면 충분하다. 이것이 스키등반의 묘미다. 스키에 클라이밍 스킨을 붙이고 그 위에 전용 왁스를 꼼꼼하게 발랐다. 스킨 왁스는 눈이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고, 미끄러짐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습설이 많은 봄철에는 필수다. 스킨이 젖은 눈의 수분을 흡수해 무거워지거나 얼어붙는 현상을 줄여 준다.
콩코르디아플라츠를 지나 빙하를 따라 점점 고도를 높였다. 그룬호른Grunhornlucke(3,286m)고개까지 빙하는 길고 깊었다. 600m의 고도를 오르며, 조용히, 묵묵히 발걸음을 이어갔다. 고개에 올라서자 마침내 핀스터라르호른의 웅장한 실루엣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산장도 시야에 들어왔다. 날씨는 맑고, 바람도 없고, 눈 상태도 완벽했다. 한 숨 돌리기로 하고 배낭에서 간식을 꺼냈다. 뒤따르던 네 명의 이탈리아 팀도 고개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짧은 눈인사만 나누었다. 말은 없었지만 같은 길을 걷는 처지라 서로의 숨소리와 땀에 공감대가 느껴졌다. 피셔빙하를 가로질러 산장까지 어어지는 여정으로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핀스터라르호른 정상. 등정의 기쁨과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는 순간이다.


둘째날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날이다. 오전 6시, 핀스터라르호른산장을 출발했다. 이날 올라야 할 고도는 1,200m였다. 새벽 어둠 속, 헤드램프를 켜고 철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출발지점은 경사진 눈사면 위였고, 단단히 얼어붙어 있어 부츠에 스키를 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서둘러도 언제나 앞서가는 팀은 있다. 그들의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남서쪽 사면을 올랐다. 눈 위 흔적이 길을 안내했다. 고도 3,500m 지점에서 목이 말라 배낭을 뒤졌다. 하지만 챙겨 넣었어야 할 1.5L 페트 물병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서두르다 산장에 그대로 놓고 온 것이다. 배낭 어깨끈에 달아 놓은 500ml 물은 올라오는 동안 모두 마신 터였다. 물 없이 하루 종일 산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융프라우요흐역에서 설원으로 나서는 게이트. 겨울 시즌에는 이곳부터 알파인 지대로 분류된다.


10시간 동안 물 없이 버텨
3,700m 지점부터 경사는 더우 가팔라졌고, 바람에 날린 분설로 앞선 팀의 흔적도 지워졌다. 안전을 위해 스키에 크램폰을 착용하려다 그만 왼쪽 장갑을 떨어뜨렸다. 장갑은 기울어진 사면을 타고 멀리 흘러 내려갔고, 멈춘 지점이 보이긴 했지만 되돌아 가기엔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응급조치로 경량인 이너Inner 장갑을 왼손에 끼고 오른쪽 장갑을 왼손 위에 덧대었다. 따뜻함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GPS에 현재 위치를 기록해 두고 하산할 때 장갑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즉시 하산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섯 시간에 걸친 오름으로 4,088m 북서릉 안부Hugisattel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배낭과 스키를 벗고 스틱 하나와 피켈만을 챙겼다. 부츠에 크램폰을 신고 200m 정도 암릉을 올라 정상에 섰다. 맞은편에 4,000m급 연봉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저 멀리 10년 전 올랐던 그로스피셔호른과 작년에 오른 그로스그룬호른도 보였다. 어딘가 더 깊이 이르고 싶은 욕망이 채워졌다.



동신항운 VIP 겨울 패스로 산악열차외에 리조트 전역의 리프트를 무제한으로 이용할수 있다.


조심스럽게 하산을 시작했다. 스키 등반의 묘미는 하강에 있다. 이제 자연설 위를 활강해 산장까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활강은 스키 기술뿐 아니라 눈 상태, 경사, 그리고 라인 선택이 중요하다. GPS에 표시해 놓았던 장갑을 떨어트린 지점에 도착했다. 지그재그로 활강하며 샅샅이 찾았는데 장갑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멀리 날아간 듯했다.
영국 알파인 클럽에서 발간한 <알프스 4,000m 봉우리>에는 산장에서 정상까지 5시간이라고 나와 있다. 예상 시간보다 많은 7시간 30분이 걸렸다. 하산에 걸린 2시간을 추가로 더하면 총 10시간 이상 걸린 셈이다.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갈증에 입이 바싹 말라 있어 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언제나 예상보다 멀고 작은 변수들이 따른다. 우연과 불편함을 견디고 나서 맞는 산장의 휴식이 달콤했다.



그로스그룬고개에서 바라본 핀스터라르호른.


셋째날은 마을로 돌아가는 일정이라 여유를 가지고 시작했다. 피셔빙하Fiescher gletscher~포더레스 갈미호른Vorderes Galmihorn(3,507m) 정상~배히리케Bächilicke고개~배히빙하Bächigletscher~레킹엔Reckingen마을까지다. 빙하의 경사가 완만해 활강에 가속이 붙지 않아 좋았다. 여름 같았으면 숨을 몰아쉬며 걸어야 했을 길을, 스키로 이렇게 쉽게 내려온다는 것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빙하 폭은 약 1.5km로 넓은 편이고 맨 왼쪽으로 경로를 잡았다. 피셔빙하와 갈미빙하Galmigletscher가 합쳐지는 곳까지 내려와 스키에 스킨을 붙이고 갈미호른까지 800m를 올랐다.
십자가 표식이 있는 정상을 지나 배히고개에 도착해 다시 다운힐 모드로 변환, 고개를 넘기 위해 클라이밍 다운으로 5m 정도 내려갔다. 이제 빙하를 따라 마을까지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빙하는 모든 감각을 깨운다. 지도를 보며 머릿속에서 그려졌던 밋밋한 선은 살아 있는 능선이 되고, 숫자로만 보였던 고도는 경이로운 풍경이 되어 눈앞에 다가온다. 낯선 곳에 발을 디딘다는 건 불안하지만 묘하게 유쾌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 처음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 어디선가 반짝 튀어나온 작은 우연이 주는 경험들이 소중하다. 익숙함 속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이 살아난다. 낯선 곳이 주는 쾌감이 있다.



동신항운 VIP 겨울패스의 다양한 혜택이 있는 바우처.


infomation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
운행구간: 그린델발트 터미널Grindelwald Terminal ↔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역
운행 거리: 약 6.5km
소요 시간:약 15분
해발 고도: 출발점 947m, 도착점 2,328m, 곤돌라당 최대 26명, 기존 경로 대비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까지 이동 시간
약 47분 단축. 2020년 12월 6일에 개통되었으며, 이 케이블카는 아이거 북벽Eiger North Face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산장정보
핀스터라르호른산장Finsteraarhornhütte
봄시즌 운영 기간: 매년 3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운영. 관리인이 상주하며 식사와 물 구입 가능. 무인 동계 산장 운영 기간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봄철 운영 기간 외에는 10개의 침상을 개방한다. 동계 산장은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취사 장비와 식량 준비는 필수. 웹사이트 : http://www. finsteraarhornhuette.ch/
동신항운 VIP 겨울 패스
동신항운에서 제공하는 융프라우 VIP 겨울 패스는 한국인 여행자를 위한 특별 할인 패스로, 1일~6일권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융프라우 지역의 철도, 스키리프트, 다양한 액티비티를 좀더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요금은 선택한 일 수(1~6일)에 따라 달라지며, 동신항운 홈페이지에서 할인 쿠폰을 신청한 후 인터라켄 동역에서 구매하면 된다. 융프라우 전 지역 스키리조트에서 이용할 수 있고, 1회 융프라우요흐 왕복 산악열차가 포함되어 있다.
*패스는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은 스키 리조트 내 리프트 이용 시, 다른 한 장은 아이거글레처역에서 융프라우요흐를 왕복하는 산악열차 탑승 시 필요하다. 분실에 대비해 구입 시 받은 영수증을 잘 보관해 두는 것이 좋다.
월간산 6월호 기사입니다.